슬퍼해야 하는 자리라는 이유만으로 눈물을 흘린 적은 몇 번이나 되는가?
당신은 정말 죽음이 두려운가, 아니면 배운 대로 반응하는 연습을 하고 있을 뿐인가?
티베트에서는 죽은 이의 몸을 산꼭대기로 옮겨 독수리에게 내어준다. 관도, 곡성도 없는 장례다.
천장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에 관해 물려받은 이미지를 깨뜨린다. 그러나 그 충격 역시 하나의 기분이다.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둘러싼 문화에서 비롯된 기분.

애도의 환상
티베트의 천장에 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글의 저자는 진짜 질문이 그들은 왜 죽음을 이렇게 대하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했다.
자아와 실존, 불안과 죽음이 얽힌 매듭을 살핀 키르케고르는 죽음을 대하는 관계를 기분과 진지함으로 나눈다. 다만 이 두 반응은 서로 얽혀 있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지함이며,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은 기분이다.”(Humbert 45)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기분(1993)은 비본래적인 감정, 곧 “방어적이고 외부를 향해 있으며, 검토되거나 성찰되지 않은 태도”다(Spitzenstätter and Schnell 1219). 사회의 죽음관을 내면화하고 죽음을 그저 바라보는 데서 생겨난다. 두려움과 슬픔, 심지어 무관심이나 회피까지, 그는 기분을 죽음 앞에서 우리가 습관적으로 취하는 자세로 본다. 그 핵심은 회피다. 자기 죽음을 마주하지 않고, 타인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수동적으로 물려받는 것이다.
반면 진지함은 내면의 깨어남이다. 자신의 필멸성을 직시하고, 그 깨달음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정신의 자유에 이르는 순간 생겨난다.
earnest는 ‘열렬한’, ‘진실한’, ‘엄숙한’을 뜻하는 고대 영어 eornost에서 왔다. 단순히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는 뜻이 아니다. 특히 신앙, 도덕, 죽음처럼 삶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진실하게, 결연하게, 가벼이 여기지 않고 마주하는 방식이다.
이 글에서 진지함은 진실성과 주체성을 함께 뜻한다. 나도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깨달음에서 출발해 진정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묻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죽어감의 자유
20세기에는 공중보건과 의학이 발전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자리에 새로운 생명을 향한 기쁨이 들어섰다.
그러나 그 대가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오늘날 사적인 죽음을 향한 사회의 공감은 옅어졌다. 개인은 죽음과 슬픔을 홀로 감당하고, 침묵 속에서 이별한다. 한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멈춰 생각하는 일은 드물다.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는 『죽음 앞의 인간』에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의 역사를 다섯 단계로 살핀다. 중세의 길들여진 죽음, 자신의 죽음, 타인의 죽음, 그리고 근대의 금지된 죽음, 혹은 보이지 않는 죽음이다(Ariès 5–6).
사회학자 제프리 고러는 사적인 애도를 자위행위에 빗대기까지 했다. 은밀히 이루어지고, 공개되면 점잔을 빼며 가려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Gorer). 죽음은 서둘러 치워야 할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고원에서 치러지는 천장에서는, 우리가 매달리는 ‘문명적인 가림막’이 마치 독수리에게 찢기듯 벗겨진다. 죽음은 더 이상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아무런 매개도 없이 벌거벗은 채 하늘과 땅으로 돌아간다.
이를 보러 온 외부인에게, 죽음을 꾸미지 않는 이 태도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직접적이다. 생의 끝이 아무 가림막 없이 눈앞에 펼쳐지고, 우리는 불안해진다. 하지만 정작 피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천장인가, 우리 자신인가?
신앙이 깊은 티베트인에게 천장은 애도라기보다 놓아줌이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생의 끝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자연과 모든 생명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이곳에서 죽음은 사회가 연출한 장면, 곧 기분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과 신앙 사이의 진실한 대화, 곧 진지함이 된다.
나는 죽는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세상의 사랑과 미움 속을 평온하고 자유롭게 걸어갈 수 있다.
참고문헌
본문에 등장한 순서
Kierkegaard, Søren. Fear and trembling/repetition. Vol. 6.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
중국사회과학문고, 『생명의 윤리: 키르케고르의 종교적 실존 윤리관 연구』, “이 책의 집필 목적과 기본 구성”. www.sklib.cn/booklib/databasedetail?SiteID=122&Type=literature&ID=4752205&fromSubID=.
Humbert, David J. Freedom and Time in Kierkegaard’s The Concept of Anxiety. 1983, McMaster University, thesis, p. 45. McMaster Digital Repository, MacSphere.
Spitzenstätter, Daniel, and Tatjana Schnell. “Effects of Mortality Awareness on Attitudes Toward Dying and Death and Meaning in Life—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Death Studies, vol. 46, no. 5, Aug. 2020, pp. 1219–33. https://doi.org/10.1080/07481187.2020.1808737.
Ariès, Philippe. The Hour of Our Death. Translated by Helen Weaver. New York: Alfred A. Knopf, 1981. 5-6.
Gorer, Geoffrey. Death, Grief, and Mourning. 1965.
Kierkegaard, Søren. Stages on Life’s Way. Translated by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8.
중국어판은 어제 먼저 올렸어요. 처음에는 중국어 한 문장, 영어 한 문장을 번갈아 넣어 한 번에 올리려 했는데, 미리보기로 읽어보니 흐름이 자꾸 끊기는 느낌이 들었어요. 자세히 보면 두 글의 문장과 구성을 꽤 다르게 다듬어서, 섞어 읽기보다는 한 언어로 쭉 읽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더라고요.
원래도 많지 않은 문장의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살려보고 싶어서, 일단 이렇게 해봅니다. :-D
읽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