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환상 문학의 본질

1970년 프랑스의 이론가 츠베탕 토도로프는 “불확실성(Uncertainty)”을 환상 문학의 본질로 규정했다.[6] 그의 『환상 문학 서설(Introduction à la littérature fantastique)』은 이 분야의 연구에 이정표가 된 책이다.

이 개념은 호접몽의 핵심적인 매력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보르헤스의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것도 틀림없이 이 지점이었을 것이다. 두 이야기와 두 관점이 뒤엉킨다. 장주가 꿈꾸는 나비인가, 나비가 꿈꾸는 장주인가? 아니면 나비와 장주는 저마다 별개의 존재인가?

보르헤스는 이 원리를 깊이 이해했다. 그는 환상 소설의 결말이 “초자연적으로도, 자연적으로도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7]

나비 꿈이 던지는 질문은 독자를 두 해석 사이에서 흔들리게 한다.

환상의 원리, 곧 “나의 상상을 따라간다”는 원리[8]에 따르면 장주는 나비의 화신이며 나비는 장주의 화신이다. 현실의 원리, 곧 “인간으로서 나의 개별성”이라는 원리[8]에 따르면 장주는 장주이고 나비는 나비다.

텍스트 속 모호한 문장들은 독자가 어느 한쪽을 택하지 못하게 한다. 보르헤스의 번역과 편집, 창작과 비평을 거치면서 독자는 두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를 번갈아 경험하며 갈피를 잃는다. 여기에서 토도로프가 정의한 환상 문학의 효과가 가장 강렬하게 나타난다.[9] 호접몽은 그렇게 환상 문학의 전범이 되어, 세계의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힌다.

보르헤스에게 모든 신학과 철학은 환상 문학이다. 한쪽 끝에는 현실이 있고, 다른 쪽 끝에는 철학자가 구상한 이념과 실체, 시간과 공간, 변화와 영원이 있다.

나비 꿈은 그저 “인생은 꿈과 같다”는 감상이 아니다. 존재를 의심하고 현실에 저항하며, 시간과 공간에 형이상학적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 아니면 양쪽 모두 참된 것인가?

이 두 끝은 서로 꼬여서 이것이면서 저것인 상태를 이룬다. 그렇게 불확실성의 몽환적 효과, 곧 환상 문학의 이상적인 형태가 나타난다.[10] 이것이 보르헤스가 호접몽을 읽어 내는 방식의 핵심이다.

보르헤스는 마지막 교훈이나 물화 자체보다, 원문이 지닌 미학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의 작품이 “형이상학적 소설”이라고 불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11]




거울 속에서

한동안 나는 보르헤스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 내게는 그의 문장보다 상상력이 더 컸다. 때로는 상상력이 너무 아름다워서 문장마저 압도하는 듯했다. 그의 단편이 가진 큰 특징은 아주 짧은 분량 안에 우주처럼 아득하고 거대한 세계를 그려 낸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그 광대한 세계의 희미한 한 귀퉁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그렇게 많은 시간과 힘을 들였다.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천국을 지나갔고, 그곳에 다녀왔다는 증거로 꽃 한 송이를 받았는데, 깨어 보니 그 꽃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12]

그는 이런 꿈으로 우리를 종종 놀라게 한다. 보르헤스는 꿈꾸기를 좋아했다. 그의 작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꿈이 있고, 그것들은 그 시절의 나에게 끝없는 상상의 여지를 남겼다.

인터넷에서 본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그가 커다란 퍼즐 상자를 내 앞에 한꺼번에 쏟아 놓는다. 그러면 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조각들을 뒤적이며, 뼈대를 만들 핵심 조각을 찾기 시작한다. 한참 땀을 뻘뻘 흘리며 맞추다 보면 깨닫는다. 이 퍼즐에는 애초에 테두리가 없다는 것을. 띄엄띄엄 몇 군데를 맞춰 봐도 어렴풋한 그림자만 보일 뿐, 대체 무슨 그림인지, 다음에는 어디를 맞춰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서로 이어지는 꿈의 흐름 속에서 장자는 나비를 꿈꾸고, 나비는 장자를 꿈꾼다. 독자는 장자를 읽고, 보르헤스는 장자를 번역한다. 꿈이 꿈에 닿는 이 경험의 흐름에는 개별적인 장자도 나비도 없다. 장주는 나비의 꿈에 스친 그림자이고, 나비는 장주의 꿈속에 떠오른 생각일 뿐이다. 둘은 서로의 꿈이 된다.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깨어난 뒤의 희미한 추론에 지나지 않으며, 실존이라 부르는 것은 한 번도 생생하게 감지된 적이 없다. 모든 것은 꿈, 그리고 꿈속의 사물일 뿐이다.

꿈속에는 주체도 객체도, 과거도 미래도 없다. 시간은 거센 물살이 아니라 멈추어 있는 연못이다. 현실에서 되풀이되는 장자의 꿈, 그 각각의 순간은 놀랍게도 앞뒤로 이어지는 연속이 아니라 하나의 같은 순간이다.

꿈은 시간이 멈췄다는 증거이며, 흐름 자체의 중단이다. 보르헤스가 호접몽을 쓸 때, 펜을 든 보르헤스도 장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는 아득하고 중국은 멀리 있으며, 그 사이의 2,400년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남는 것은 자신이 장자가 되었다고 꾸는 그의 꿈, 그리고 나비가 되었다고 꾸는 장자의 꿈뿐이다.

꿈속의 꿈이 겹겹이 비치며 현실과 시공간의 모든 법칙을 뒤집는다. 이 순간에는 오직 환상만이 성립할 수 있다.

Image

그런데 「시간에 대한 새로운 반론」의 마지막에 이르면, 보르헤스는 다시 180도 방향을 돌려 선언한다. “시간은 나를 이루는 실체다. 시간은 나를 휩쓸어 가는 강이지만, 내가 바로 그 강이다. 나를 찢는 호랑이지만, 내가 바로 그 호랑이다. 나를 삼키는 불이지만, 내가 바로 그 불이다. 세상은, 불행히도, 실제로 존재한다. 나는, 불행히도, 보르헤스다.”[13]

여기서 현실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환상에 단호히 맞선다.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주체는 존재하고, 대상도 존재한다. 공간은 실제로 펼쳐져 있으며, 역사는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 그가 다시 들려주는 호접몽은 바로 이런 양가적인 영역을 독자에게 열어 주는 것이 아닐까? 환상과 현실이 함께 존재하며 서로를 낳는 곳. 이것이 환상 문학이 가장 순수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우리는 그렇게 끝없이 조각을 맞추고 꿈을 꾼다. 우리 모두가 가상이 되어 버릴 때까지.

이 무서운 허무야말로 보르헤스가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부른 까닭인지 모른다. 「돈키호테의 부분적인 마술」에서 거울을 보지 못하는 그의 두려움도, 어쩌면 깊은 곳에서 여기에 닿아 있을 것이다.[14]

나는 그가 왜 거울을 보지 못하는지 이해한다.


참고 문헌


[6] Tzvetan Todorov, The Fantastic: A Structural Approach to a Literary Genre, trans. Richard Howard (Cleveland: Press of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1973), p. 25.


[7] Jorge Luis Borges, Other Inquisitions, trans. Ruth L. C. Simms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1964), p. 115.


[8] The Complete Works of Chuang Tzu, trans. Burton Watso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68), p. 49.


[9] Todorov, Tzvetan. The Fantastic: A Structural Approach to a Literary Genre. Translated by Richard Howard, Press of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1973.


[10] Todorov, The Fantastic, p. 33.

[11] Emir Rodríguez Monegal, Jorge Luis Borges: A Literary Biography (New York: E. P. Dutton, 1978), p. 351.


[12] Borges, Jorge Luis. Dreamtigers. Translated by Mildred Boyer and Harold Morland, University of Texas Press, 1964.


[13] Borges, Jorge Luis. “A New Refutation of Time.” Complete Works: Essays (Volume 2), translated by Wang Yongnian and Lin Zhiwu, Shanghai Translation Publishing House, 2015, p. 487.


[14] Borges, Jorge Luis. “Partial Magic of Don Quixote.” Complete Works: Essays (Volume 1), translated by Wang Yongnian and Lin Zhiwu, Shanghai Translation Publishing House, 2015, p.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