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가 봄꽃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어느 계절과 세대에나 슬픔은 있다. 그래도 백 걸음 안에는 언제나 사랑이 머문다. 바람의 속삭임 없이 자라는 나무는 없고, 기름진 흙 없이 무성해지는 씨앗도 없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계속된다. 우리가 보지 못할 때에도.
그것이 토니 삶의 절대적인 신조였다. 부정적인 생각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일을 극단적으로 거부할 정도였다. 그래서 토니는 엄마의 마음 상태를 신경 쓰지 않는다. 이혼한 뒤부터, 멈추지 않는 슬픔과 경계심이 커튼 뒤에 숨어 있다가 덮쳐오고, 열쇠 구멍으로 스며들었다. 밤마다 토니는 집 안을 돌아다니지 못했다. 발밑의 마룻바닥이 아주 조금만 삐걱여도 엄마가 불안해하고 짜증을 낼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낮의 엄마는 조용하지 않았다. 옛 가족과의 비참했던 경험을 원망하며 되풀이했고, 앞으로도 자신과 같은 혼란이 닥칠 거라는 불안을 퍼뜨리며, 둘을 다툼으로 끌어들였다. 보통의 문화적 규범이라면 단란하다고 여길 모자의 대화가, 그 자리에서 서로를 화나게 하며 끝났다. 그러나 말다툼 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토니는 세월이 엄마의 얼굴에 파놓은 주름과 고생이 피부에 새긴 그물 같은 선들을 바라보았다. 완전하게는 아니어도, 그 대화가 준비된 말도, 진심으로 원했던 말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엄마의 쓴 마음은 악의가 아니라, 이름 붙일 수 없을 만큼 오래되고 손쓸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에서 왔다. 지도도 없이 버텨보려는 두 사람이 충돌한 뒤, 탄식만 남는다고 해도.
토니는 엄마 앞에서 말이 없어졌다.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면서, 낫지 않는 상처를 달래는 약이기도 했다. 거의 20년의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 귀한 유대와 그 안의 원래 마음을 보존하려는 것이었다. 서로를 내버려두는 편이 효과가 있는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 줄어든다면. 그래서 토니는 이렇게 행동하기로 한다.
오랜 세월 얼어 있던 차분한 성격은 점점 더 과묵해졌다. 그러다 평범해 보이는 어느 아침, 무언가 바뀐다. 오늘은 조금 늦게 깼다. 복도에서 아침밥 냄새가 짙고 향긋하게 흘러들었다. 어제보다 조금 찬 공기를 타고서. 짧은 잠옷을 입은 토니는 무의식중에 종아리를 움찔하며, 오늘 집이 왜 더 조용한지 생각했다. 그때 갑작스러운 전화가 막 잠에서 깬 나른함을 깨뜨렸다.
엄마였다. “좋은 아침. 아침은 먹었니? 나 병원에 있는데,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놀라지 말고 와줘…… 고마워.” “어, 왜? 알았어, 빨리 갈게.”
병원으로 가는 길, 가족과, 그리고 엄마와 보낸 순간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러나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은 엄마가 겪을지 모를 온갖 어려움을 상상하게 했다. 기억 속의 미소를 끌어냈다. 더 이상 토니를 따뜻하게 해주지 못하는 반짝임이었다. 슬픔이 더 깊이 가라앉을수록 그랬다. 엄마의 잦은 불안과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 그 징후들은 토니가 오래 무시해온 사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토니는 지하철 칸에서 굳은 채 서 있다. 32명을 센다. 남자 17명. 여자 15명. 네 정거장 남았다. 생각은 내달리지만 행동은 정확하다. 숫자 하나하나가 미지의 것에 맞서는 연약한 방어막이다. 어깨 사이의 간격, 열차가 제동하는 리듬까지 세세하게 목록으로 만들면, 목적지에서 기다릴 나쁜 소식을 늦출 수 있을 것처럼. 평온한 얼굴 아래에서는 공포가 사이렌처럼 맥박친다. 역을 하나 지날 때마다 더 커진다. 머리 위 광고 세 개가 몇 분째 깜빡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가 지나온 시간처럼. 과거는 이미 오늘의 자기 안에 모든 세부를 새겨 넣었다. 후회나 간청으로는 되돌릴 수 없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걱정하지 마. CT만 찍으면 돼.” 엄마는 안심시키듯 말했다. “요 며칠 겪고 보니까, 옛날 일은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깊은 한숨 뒤에 덧붙였다.
“이런 게 살아간다는 느낌일지도 모르지.” 토니가 말했다. “고생하고, 기회를 놓치고.”
“기운 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기 이름만 써. 직계가족 한 명의 동의가 필요하대.” 엄마는 웃었다. 몸짓은 편안했지만, 토니는 그 안의 긴장을 알았다. 그보다 더 단단한 강인함으로 덮고 있는 긴장을.
“어, 알았어.”
“네 할 일 하러 가…… 그리고 아빠한테는 말하지 말고.”
토니가 학교에 돌아왔을 때는 마지막 수업에 몇 분 늦은 뒤였다.
“잘 지냈냐, 친구?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 뭐,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린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토니는 친구 몇 명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친구는 많고 적은 거의 없었다.
“그만해. 매일 하는 인사치곤 별로다. 이제 집중하자.” 토니는 부정적인 감정을 퍼뜨리지 않는다. 그래선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오늘 아침은 머릿속을 가린 안개 같다. 그래도 살아가려면 미래를 향한 바른 방향을 찾아야 한다. 안개를 뚫고, 용기를 내어 늪에서 자신을 끌어내야 한다.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토니는 주변 사람과의 매 순간을 아껴야 할 이유를 찾았다고 믿는다. 무심히 넘기기에는 너무 귀하고 연약한 연결.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변화를 바라보며. 결심은 단단했다. 자기 세계를 즐기기 위해 애쓰기로 했다.
“토니! 수업에 집중해. 숙제도 안 끝냈잖니.” 생물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평소 방식대로, 방금 배운 내용을 말하라는 지목을 받았다. “동물의 형질은 무엇으로 결정될까?”
딴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토니는 순전히 짐작으로 답했다. “유전자요.”
“그걸론 부족해. 오늘은 운이 없구나, 토니. 다들 아는 것 말고 다른 얘기를 해봐.”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토니는 늘 선생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수업 때 말했지? 숙제 안 한 벌로, 가기 전에 칠판을 지워라. 자, 무엇이 왜 영향을 주는지 답해볼 사람?”
“저요.” 토니의 대각선 앞에 앉은 여자아이가 자신 있게 답했다. 이름이 롤라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막힘없이 답하는 순간 눈이 반짝였다. “환경 요인도 표현형 발현에 큰 영향을 줍니다. 표현형에는 가소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뽐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몰입하고 있었다. 그 맑은 열정에 토니는 놀랐다. 롤라를 바라보는데 그린이 속삭였다. “생물 수업을 같이 듣기 전엔, 쟤가 그냥 평범한 학생인 줄 알았던 애들이 많아.”
“나도 그랬어.”
“그런데 요즘 공부는 어때? 괜찮은 글쓰기 대회를 알게 됐거든. 국제 대회야. 시간 좀 있어?” 그린이 물었다.
“시간만 있으면 괜찮지.”
“좋아, 같이 할 사람들 찾아볼게.”
롤라의 설명이 끝나자 수업도 끝날 무렵이었다. 칠판으로 가던 토니는 롤라가 가방을 싸서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걸 알아챘다. 노트를 다듬는 건지, 무언가 기다리는 건지.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둘은 친하지 않았다. 이름만 알았다. 그게 전부였다. 피할 수 있는 실수로 타박받지 않으려고, 토니는 생물 수업 내용이 적힌 부분은 남겨두었다. 그녀의 수고를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여긴 다 했어.” 토니는 이미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꺼내려 했다.
“잠깐. 이것보다 더 해야 한다는 거 알지?” 롤라가 재빨리 붙잡았다. 왜 자신을 멈춰 세우는지 토니는 알 수 없었다.
“왜 그래. 네가 필기하려고 필요한 줄 알았지.” 내키지 않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방금 쥔 가방을 내려놓은 뒤 칠판으로 갔다. “그래도 내 짐작은 맞지? 생물을 좋아하고, 전공하고 싶은 거잖아.”
“아니. 경제학에 지원해서 홍콩으로 갈 거야. 가족이 그러길 바라니까.”
토니는 혼란스러웠다. 학생은 가족의 뜻만 따를 게 아니라, 자기 지원 과정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함께 동의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가족의 사랑과 태도는 세월의 바람에 마르는 자갈처럼 조금씩 무너진다. 한쪽은 늘 속상해하고 불평하고, 다른 쪽은 끝내 이기려 드는 동안.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이 갈등 속에서, 학생에게는 자기 관심에 따라 탐색할 만한 온전한 삶이 있고, 부모는 아이를 영원히 감싸고 있을 수 없다. 그러니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놓아줘야 한다. 토니는 대체로 자신의 길을 스스로 정한 학생에게 어려움을 견딜 동기와 회복력이 더 크다고 믿었다. 결국 운명은 혼자 감당하는 것이지만.
“그건 안 되지. 내 말은, 그게 네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거야.” 토니는 칠판지우개를 집었다가 갑자기 손을 멈췄다.
“생물이 좋으면 그걸 공부해야지, 그게 아니라…… 또 미안한데, 네 슈거 대디가 뭘 원한다고?” 토니는 피식 웃으며 뒤돌아 칠판을 지웠다. 몇 초 전 그녀가 한 말을 분명히 기억했다. 다만 훈계하는 허풍쟁이가 되지 않도록 그의 감정 지능이 제동을 걸었다. 이유의 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 자신 역시 인생 초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기억 용량이 쥐똥만 하면서 그런 걸 놀리지는 마.” 롤라가 말했다.
“아, 알겠어…… 미안. 그래도 너 자신을 위해 선택해야지. 난 네가 생물학에 지원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게 네 분야잖아. 잘하기도 하고. 생물에 관해서 본 건 세세한 내용이든 아니든, 좋아하고 쉽게 기억하잖아.”
“하지만…….” 롤라는 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토니는 엄마 걱정이 점점 커져,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만 얘기해. 무슨 뜻인지 알잖아.” 할 일을 마친 토니가 덧붙였다. “집에 가고 싶어. 잘 가.”
집으로 가는 길이 조금 더 길게 느껴졌다. 토니는 부엌에서 나는 냄새를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그래도 엄마에게서 몇 걸음 떨어져 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때?”
“나쁘지 않아.”
계속……